"비구들아, 두 가지 극단이 있으니 출가자는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여러 가지 애욕에 빠져 그것을 즐기는 것이니, 그것은 열등하고 세속적이고 범부의 짓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니, 그것도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다. 비구들아, 여래(如來)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원만히 잘 깨달았다. 중도는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킨다. 그리고 고요함과 수승(殊勝)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카필라성을 뛰어넘어 수행을 시작하고, 고행을 거듭하기 6년. 붓다가야 보리수 나무아래의 금강보좌에서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 그 부처님이 사자후를 토한 것이었습니다. 다섯 비구를 상대로 시작된 부처님의 첫 설법은 흐르는 물처럼 거침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중도'의 가르침에 이어 '팔정도'와 ‘사성제’의 가르침을 설하였습니다. 가르침을 들은 교진여가 다섯 수행자 가운데 가장 먼저 가르침을 이해했고 이어 다른 수행자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도 모르게 "아! 참으로 교진여는 깨달았구나. 아! 참으로 교진여는 깨달았구나"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녹야원의 유명한 초전법륜입니다.
다섯 수행자는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몇일 뒤 ‘야사’라는 청년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다가와 법문을 들었습니다. 야사와 그의 친구들은 법문을 듣는 순간 마음이 열려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아들 야사를 찾아온 부모는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재가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로서 법을 설하시는 부처님(彿)과 진리의 가르침(法) 그리고 그 진리를 수행하는 제자들(僧)로 비로소 불교의 삼보가 갖추어지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출가신자와 재가신자가 모두 갖추어져 수행공동체인 승가가 최초로 이루어 졌습니다.
부처님은 아라한의 지위에 오른 제자들을 모아놓고 마침내 ‘전도선언’을 하였습니다. “비구들이여,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전도를 떠나되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를 설하라. 사람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들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니,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하여 우르벨라로 가리라.”(잡아함경)
인도의 북쪽 땅 녹야원에서 시작한 진리의 수레바퀴는 세상을 향해 구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북쪽으로는 카리라와스뚜, 남쪽으로는 보드가야, 동쪽으로는 앙가국의 참빠, 서쪽으로는 코삼비에 이르는 갠지스강 중류에 이르는 동서550Km, 남북350Km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