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이 가없어도 건지고야 말리라.
번뇌무변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가 끝없어도 끊고서야 말리라.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이 한없어도 배우고야 말리라.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가 위없어도 이루고야 말리라.
이는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 보살의 지상과제이겠지만, 그보다도 먼저 중생을 제도하겠다 는 뜻을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보살의 수행을 흔히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上求菩提 下化衆生)"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 말은 먼저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이 아니라 깨달음을 구하는 일이 곧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며,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 곧 깨달음을 구하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장보살과 같은 보살은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하고 있으며, 법장비구(아미타불의 前身)의 48서원에는 자신이 비록 부처가 된다고 하더라고 괴로운 중생에게 깨달음을 열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결코 깨달음을 얻지 않겠노라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육바라밀(六波羅蜜)
아라한은 오로지 자기의 완성을 위해 수행하는 것에 비하여 보살은 보살의 자각으로부터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수행이 시작됩니다. 이른바 불타(佛陀)는 중생을 구제하는 성인으로 대자대비의 소유자입니다. 그 불타가 되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은 필연적으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며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행(利他行)의 실천이 자기 수행을 완성하는 길인 것입니다.
대표적인 보살의 수행덕목 으로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라밀이란 피안(彼岸)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 수행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이 말의 의미는 ‘피안에 이른 상태’ 혹은 ‘최상의 상태’ 즉 완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육바라밀에는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가 있다.
① 보시(布施 dana)바라밀
자신의 모든 것을 중생들에게 조건 없이 베풀면서도 무엇을 주었다는 생각마저 버림으로써 자신의 탐심(貪心)을 끊고 집착을 떠나며 타인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윤리적 실천수행입니다. 〈금강경 金剛經〉에서는 보시의 구성요소인 베푸는 자(施者), 받는 자(受者), 그리고 베푸는 내용이 되는 것(施物)의 3가지 모두가 공(空)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보시는 일반적으로 재보시(財布施), 법보시(法布施), 무외시(無畏施)의 세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재보시란 자신이 소유한 물질적인 것을 중생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것이고, 법보시는 모든 중생들이 열반에 들도록 불법(佛法)을 설하여 선근(善根)을 증장시키는 것이며, 무외시는 스스로 계를 지키며 남을 해하지 않고 일체 중생을 두려움에서 구하여 제도(濟度)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② 지계(持戒 sila)바라밀
재가(在家)와 출가(出家), 대승과 소승의 모든 계(戒)와 율(律)을 잘 지켜 악업(惡業)을 멸하고 몸과 마음의 청정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는 스스로 십악업(十惡業)을 짓지 않고 십선도(十善道)를 행하며 또한 남들이 십선도를 행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지계바라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③ 인욕(忍辱 ksanti)바라밀
인욕이란 참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타인으로부터 받는 모든 박해와 고통을 잘 참고 나아가 그것을 받아들여 원한과 노여움을 없애고 제법(諸法)을 밝게 관찰하여 마음이 안주(安住)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④ 정진(精進 virya)바라밀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선행과 바라밀을 힘써 실천하여 나태한 마음을 버리고 선법(善法)을 닦아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정(精)은 순일무잡(純一無雜)을 뜻하고 진(進)은 용맹무퇴를 의미합니다. 보통 중생의 정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보살의 정진은 집착함이 없는 이타의 정신에서 비롯한다고 합니다.
⑤ 선정(禪定 dhyana)바라밀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을 멈추고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진리를 바르게 사유하는 수행입니다. 세계 실상이 무자성(無自性)이고 공(空)한 것임을 삼매로서 직관하여 그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⑥ 반야(般若 prajna)바라밀
일체법(一切法)의 자성(自性)이 공(空)함을 깨달아 진여실상(眞如實相)을 바로 보는 지혜의 완성을 말합니다.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의 어머니로 표현되며, 앞의 5바라밀 수행의 바탕이 되며 또한 모든 분별지(分別知)를 떠난 궁극적인 지혜이므로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깨닫지 못한 자의 생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은 '얻는 바가 없다'(無所得)라고 말하여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의 바라밀수행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이타에 전력하며 성불도 도모하지 않는 끊임없는 수행이기 때문에 이 수행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대단한 결의가 필요합니다. 보살의 이 결의를 갑옷을 입고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에 비유하여 ‘큰 서원(弘誓)의 갑옷(大鎧)을 입는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