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상(唯識思想)

공(空)이란 용어의 원어는 ‘sunya’로서 본래 ‘부풀어 오른’, ‘속이 텅 빈’등을 의미하여 ‘비어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말이 중국에 와서 공(空)으로 한역되었고, 특히 <반야경>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 이르러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으로 다루어게 되었습니다. 이 공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취급하여 사상적인 관점에서 논의한 것을 공사상이라 하는데 특히 대승불교에서 이러한 공사상을 강조한 사람들을 ‘공론자(空論者)’라 부르고, 그들의 주장을 ‘공론(空論)’이라 하였습니다.

<반야경>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 공사상은 후에 용수(龍樹)대사에 이르러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대승불교 철학을 발생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용수대사는 공의 개념이 불타(佛陀)가 깨달은 연기법의 이치와 일치하고 공은 곧 무자성(無自性)인 것을 분명히 밝히고 <중론 中論>을 저술하여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수립하고 그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중론> 제24장 18게에서 ‘무릇 연기하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들은 공성(空性)이라 설한다. 그것은 임의로 시설되어진 것이며, 그것은 중도(中道) 그 자체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게송에서 용수대사는 <반야경>에서 공이라고 설했던 것은 그것이 바로 연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 각기 독자적인 존재의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진 까닭에 연기의 관계를 떠나있는 독자적인 성질로서 자성(自性)이나 실체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과 연의 상호관계로 생겨나는 것이고 따라서 그와 같은 것은 곧 자성이 없는 까닭에 공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체가 공하다는 관찰은 반야바라밀을 실천하여 얻어지는 것으로 이것은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단계가 아니라 지혜의 완성에 도달한 경지에서 얻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반야경>은 법의 공을 주장하고 있으며, 공관은 바로 반야바라밀의 경지에서 얻어지는 지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