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다 팡하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비구와의 대론) 7장 ~ 끝.

202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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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1. 열여섯 가지 기억 형식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기억은 몇 가지 방법에 의하여 일어납니까. 

[존자] 대왕이여, 기억은 열여섯 가지 방법에 의하여 일어납니다. 첫째 기억은 자각적 회상에 의하여 일어나며, 둘째, 외부로부터 조성에 의하여 일어나며, 셋째, 어느 기회에 주어진 강한 인상에 의하여 일어나며, 넷째, 이익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나며, 다섯째, 이익 아님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나며, 여섯째, 서로 비슷한 것(相)으로부터 일어나며, 일곱째, 서로 다른 것(相)으로부터 일어나며, 여덟째, 담화한 지식으로부터 일어나며, 아홉째, 특징으로부터 일어나며, 열째, 상기로부터 일어나며, 열 한째, 기호로부터 일어나며, 열 두째, 셈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나며, 열 셋째, 암송(暗誦)으로부터 일어나며, 열 넷째, 수행(修行)으로부터 일어나며, 열 다섯째, 서적을 참고하는 데서 일어나며, 열여섯째, 저당물(抵當物)로부터 일어납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자각적 회상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아아난다는 부인 신도 쿠줏타라아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전생을 상기하는 사람들이 전생을 회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기억은 자각적 회상으로부터 일어납니다. 


[대왕] 어찌하여 외부로부터의 조성에서 일어납니까. 

[존자] 본래 잊어버리기 쉬운 사람에게 딴 사람이 그에게 상기시키기 위하여 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기억은 외부로부터의 조성에서 일어납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어느 기회에 주어진 강한 인상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왕위에 오르는 대관식을 했을때나 성자(聖者)의 경지에 도달한 자로서의 과보(果報)를 얻었을 때 처럼, 기억은 어느 기회에 주어진 강한 인상에 의하여 일어납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이익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어떤 일에서 행복을 얻은 사람이 이러한 일에서 이러한 행복을 얻었다고 상기하는 것처럼, 기억은 이익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납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이익 아님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어떤 일에서 고통을 받은 사람이 이러한 일에서 고통을 받았다고 상기하는 것처럼, 기억은 불이익 아님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납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서로 비슷한 것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비슷한 사람을 보고 어머니나 아버지나 형제나 자매를 상기하는 것과 같고, 또 낙타나 숫소나 노새를 보고 그와 비슷한 낙타나 숫소나 노새를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서로 다른 것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어떤 것에 대하여 모양은 이러하고, 소리는 이러하고, 향기는 이러하고, 맛은 이러하고, 만지면 이러하다고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담화한 지식으로 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본래 잊어버리기 쉬운 사람이 있을 때, 딴 사람이 상기하게 하여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특징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소를, 찍힌 도장에 의하여 알아보고 특징에 의하여 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상기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본래 건망증이 있는 사람에게 상기하라, 상기하라고 되풀이하여 상기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기호(記號)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서예(書藝)를 배운 사람이 이 글자 다음에는 저 글자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셈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산술을 배움으로서 계산하는 사람이 큰 수도 셈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암송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암송하기를 배운 사람이 많은 것도 암송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수행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한 생존, 두 생존이라고 하는 것처럼 전생의 생존을 그 모습과 특징에 의하여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서적을 참고하는 데서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왕이 이전의 명령을 상기할 때 책을 가져오라고 함으로써 그 서적에 의하여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저당물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저당한 물건을 보고서 그것이 저당된 사정을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어찌하여 기억은 경험한 일로부터 일어납니까. 

[존자] 이를테면 전에 보았으므로 모양을 상기하고, 전에 들었으므로 소리를 상기하고, 전에 냄새 맡았으므로 냄새를 상기하고, 전에 맛보았으므로 맛을 상기하고, 전에 만져 보았으므로 만진 것을 상기하고, 전에 식별했으므로 사상(法)을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2. 염불로써 구하는 것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백년 동안 악행을 했더라도 죽을 때 한 번만 부처님을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천상(天上)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또 그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 살생(殺生)을 했더라도 지옥에 태어날 것이라'고.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조그마한 돌이라도 배에 싣지 않고 물 위에 뜰 수 있습니까. 

[대왕] 그럴 수 없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백 개의 수레에 실을 만한 바위라도 배에 싣는다면 물 위에 뜰 수 있습니까. 

[대왕] 그렇습니다. 물 위에 뜰 수 있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선업(善業)은 마치 그 배와 같이 볼 것입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3. 수행의 목적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과거의 괴로움을 버리기 위하여 노력합니까. 

[존자] 아닙니다. 

[대왕] 그러면 미래의 괴로움을 버리기 위하여 노력합니까. 

[존자]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 그러면 현재의 괴로움을 버리기 위하여 노력합니까. 

[존자] 그렇지도 않습니다. 

[대왕] 만일 그대들이 과거의 괴로움이나 미래의 괴로움이나 또 현재의 괴로움을 버리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아니 무엇 때문에 그처럼 노력합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존자] 대왕이여, 우리들은 `이 괴로움은 사라지고 저 괴로움은 생기지 말아 주기를 바라는 소원 때문에 노력합니다. 

[대왕] 존자여, 미래의 괴로움은 있습니까. 

[존자] 없습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지금 있지도 않는 괴로움을 버리기 위하여 노력한다고 하니 지나치게 슬기롭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대는 전에 어떤 적국의 왕이 원수나 대항자로서 맞선 일이 있었습니까. 

[대왕] 있었습니다. 

[존자] 그대는, 그때에야 비로소 참호를 파고, 보루(堡壘)를 쌓고, 성문을 달고 망탑을 세우고, 양곡을 실어 오게 하였습니다. 

[대왕]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미리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존자] 그대는 그때에야 비로소 상술을 익히고, 마술을 연습하고, 차술을 훈련하고 궁술을 수련하게 하였습니다. 

[대왕] 아닙니다. 존자여, 그것들을 미리부터 익혀 두게 하였습니다. 

[존자] 어떤 목적 때문에 그러했습니까. 

[대왕] 장차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미래의 위험이 지금 존재합니까. 

[대왕] 존재 안합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대는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하여 그런 일을 한다니 지나치게 슬기롭습니다. 


[대왕]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존자]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목이 말랐을때 비로소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여 우물을 파고 저수지를 만듭니까. 

[대왕]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모두 미리부터 준비해 둡니다. 

[존자] 무엇 때문에 그럽니까. 

[대왕] 장차 목마름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존자] 그렇다면, 미래의 목마름은 지금 존재합니까. 

[대왕] 존재 안합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대는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목마름에 대비한다니 지나치게 슬기롭습니다. 


[대왕]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존자]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대는 배가 고팠을 때 비로소 무엇이 먹고 싶다고 하여 밭을 갈고 곡식을 심습니까. 

[대왕]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미리부터 준비합니다. 

[존자] 무엇 때문에 그럽니까. 

[대왕] 미래의 배고픔을 막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존자] 그렇다면 미래의 배고픔은 지금 존재합니까. 

[대왕] 아닙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대는 지금 존재하지도 않은 미래의 공복에 대비한다니 지나치게 슬기롭습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4. 신통력을 갖는 자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범천계(梵天界)는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존자] 여기서 참으로 멉니다. 대궐만큼 큰 바위가 그곳에서부터 떨어진다면, 일주야에 4만 8천 요자나씩 떨어져 넉 달만에 비로소 땅위에 닿습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힘센 사람이 구부러진 팔을 펴고 또는 펴진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신통력이 있어 마음이 자재(自在)롭게 된 수행승은 잠부디이바에서 살아지면 범천계에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그런 말을 믿지 않습니다. 

[존자] 이와같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몇 백 요자나까지도 다달을 수 있습니다. 

장로는 대답했다. 


[존자] 그대의 출생지는 어딥니까. 

[대왕] 알라산다라는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존자] 알라산다는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대왕] 2백 요자나입니다. 

[존자] 그대는 전에 거기에서 어떤 일을 치렀는지 지금 그것을 상기할 수 있습니까. 

[대왕] 할 수 있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대는 2백 요자나를 아주 쉽게 갔습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5. 사후(死後), 다시 태어나기 까지의 시간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여기(이 세상)서 죽어 범천계에 태어나는 사람과 여기서 죽어 카슈미일(迦濕彌羅 인도의 한 지방)에 태어나는 사람과 어느 쪽이 먼저 도착합니까. 

[존자] 둘 다 동시에 도착합니다. 


[대왕]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존자] 대왕은 어느 도시에서 태어났습니까. 

[대왕] 칼라시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존자] 칼라시는 여기서 얼마나 멉니까. 

[대왕] 약 2백 요자나입니다. 

[존자] 카슈미일은 여기서 얼마나 멉니까. 

[대왕] 12 요자나입니다. 

[존자] 대왕이여, 먼저 칼라시를 생각하시오. 

[대왕] 생각했습니다. 

[존자] 이번에는 카슈미일을 생각하시오. 

[대왕] 생각했습니다. 

[존자] 어느쪽이 더 빨리 생각했습니까. 

[대왕] 어느 쪽이나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여기서 죽어 범천계에 태어나는 것이나, 여기서 죽어 카슈미일에 태어나는 것이나 동시입니다. 빠르고 늦은 것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두 마리 새가 공중을 날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높은 나무에 앉고 또 한 마리는 낮은 나무에 앉았다고 합시다. 두 마리가 동시에 내려 앉았다면 어느 쪽 그림자가 먼저 땅에 비치겠습니까. 

[대왕] 두 마리 그림자가 동시에 땅에 비치겠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대가 말한 경우도 꼭 이와 같습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6.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가지 지혜(칠각지)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깨달음에 이르는 데 몇 가지 지혜가 있습니까. 

[존자] 대왕이여, 일곱 가지 있습니다. 

[대왕] 몇 가지 지혜에 의하여 깨치게 됩니까. 

[존자] 한 가지 지혜 즉 `진리의 추구'라는 지혜에 의합니다. 

[대왕] 그렇다면 왜 일곱 가지 있다고 하였습니까. 

[존자]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칼이 칼집에 들어 있고 손에 쥐어져 있지 않다고 합시다. 베고 싶던 것을 벨수 있습니까. 

[대왕] 벨 수 없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진리의 추구라는 한 가지 지혜가 없으면, 그 밖의 여섯 가지 지혜에 의하여 깨달음에 이를 수(覺證) 없습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7. 공덕을 증대시킴으로써 얻는 것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선행의 과보로서 얻는) 공덕(福)과 (악행의 과보로서 얻는) 죄과(非福)는 어느 쪽이 더 큽니까. 

[존자] 공덕 즉, 복이 더 큽니다. 

[대왕] 어째서 그러합니까. 

[존자] 대왕이여, 죄과를 짓는 사람은 자기의 악행을 알아차리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과는 증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덕(복)을 짓는 사람은 후회하는 일이 없으며 자기에게 기쁨이 생기고, 환희가 생기며, 몸이 편안해지고, 안락감을 가지며, 그 사람의 마음은 통일 평정되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봅니다. 그러므로 공덕(복)은 증대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예를 들면 죄를 짓고 손발을 잘린 사람이라도 한 묶음의 연꽃을 부처님께 바친다면 91 겁(劫)동안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왕이여, 이것이 내가 `공덕은 죄과보다 더 크다'고 한 이유입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8. 모르고 짓는 악행은 지은 죄가 더 크다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알면서 악행을 짓는 사람과 몰라서 악행을 짓는 사람은, 누가 더 화가 큽니까. 

[존자] 대왕이여, 몰라서 악행을 짓는 사람이 화가 더 큽니다. 

[대왕] 존자여, 그렇다면 우리 왕자나 대신들이 모르고 잘못을 범한다면 그에게 갑절의 벌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뜨겁게 불에 단 쇳덩이를, 한 사람은 모르고 붙잡았고, 한 사람은 알고 붙잡았다면 어느 쪽이 더 심하게 상처를 입겠습니까. 

[대왕] 모르고 붙잡은 사람이 더 심하게 됩니다. 

[존자] 마찬가지로, 모르고 악행을 짓는 사람이 더 화가 큽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9. 신통력(神通力)과 마음의 자재력(自在力)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이 육신을 가진 채로 웃타라쿠루(북방의 이상경)나 범천계나 딴 대륙으로 갈 수 있는 자가 있습니까. 

[존자] 있습니다. 

[대왕] 어떻게 하여 갈 수 있습니까. 

[존자] 대왕이여, 그대는 전에 지상에서 반 길이나 한 길을 건너뛴 것을 기억합니까. 

[대왕] 그렇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나는 8 라디니를 건너 뛸 수 있었습니다. 

[존자] 어떻게 하여 그렇게 뛸 수 있었습니까. 

[대왕] 나는 뛰겠다 마음먹고 결심한 순간 내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신통력이 있고 마음의 자재력을 가진 수행자(比丘)는 어떤 경우, 자기가 뛰어 오르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마음의 힘에 의하여 공중을 날라갑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0. 장장 7백마일이 뼈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 비구들은 백 요자나나 되는 긴 뼈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무도 백 요자나 되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하여 그렇게 긴 뼈가 있을 수 있습니까. 

[존자]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바다에 5백 요자나나 긴 고기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대왕] 그렇습니다. 들은 적이 있습니다. 

[존자] 만일, 그런 고기가 있다면 그 고기는 백 요자나 되는 뼈를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왕] 잘 알겠습니다.나아가세나 존자여.     




11. 초인적인 생리현상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비구들은 들이마시는 숨과 내 쉬는 숨을 멈출 수 있다고 합니다. 

[존자] 그렇습니다. 멈출(止滅) 수 있습니다. 

[대왕] 어떻게 하여 멈출 수 있습니까. 

[존자]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그대는 어떤 사람이 코고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대왕] 있습니다. 

[존자] 그런데 그 소리는 몸을 구부리면 그치지 않습니까. 

[대왕] 그칩니다. 

[존자] 코 고는 소리는 몸과 행위(戒律)와 마음과 지혜의 수련이 없는 사람도 몸을 구부리므로 멈출 수 있습니다. 하물며, 모든 방면의 수련을 거쳐 제 4선(第四禪)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겠습니까.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2. 큰 바다에 관한 논의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바다)란 말(表現)이 있습니다. 어째서 그 물을 바다라고 부릅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존자] 대왕이여, 물 만큼 많은 소금이 있고, 소금만큼 많은 물이 있기 때문에 바다라고 부릅니다.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어째서 대양은 한결같이 짠 맛을 가지고 있습니까. 

[존자] 대왕이여, 물이 영원히 있기 때문에 바다는 한결같이 짠 맛을 갖고 있습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3. 지혜는 가장 미세한 것도 끊을 수 있다.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극히 미세한 것도 쪼갤 수 있습니까. 존자여, 만물 중에서 가장 미세한 것은 무엇입니까. 

[존자] 대왕이여, 가장 미세하고 미묘한 것은 진리(法)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諸法 즉 모든 現象)이 다 미세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법은 어떤 것은 미세하고 어떤 것은 조대(粗大)합니다. 쪼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지혜(般若)로써 쪼갤 수 있으며, 지혜를 쪼갤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4. 영혼과 정신 작용의 구별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식별(識)과 지혜(慧)와 생명체의 정신(命, 즉 정신적 자아 또는 영혼)등 세 가지는 본질(義)과 말(語)이 각기 다른 것입니까, 아니면 본질은 같고 말만이 다릅니까. 

[존자] 대왕이여, 식별은 분별해 아는 지각을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이성으로 식별해 아는 것을 특징으로 하지만, 생명체의 정신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정신과 같은 것이 없다면, 무엇이 눈으로 형상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촉감을 느끼고, 마음(意)으로 사물(法)을 식별합니까. 만일 정신 같은 것이 있어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식별한다면, 눈의 문이 제거될때 정신(個我)은 머리를 밖으로 뻗고 더 큰 공간을 통하여 전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형상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귀나 코나 혀나 피부가 제거될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 전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알고, 감촉을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왕]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 그렇다면 육신 안에 정신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대왕]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5. 뛰어난 심리현상의 분석


장로는 말했다. 

[존자]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이러한 말을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하나의 감관 대상에 대하여 작용하는 물질적이 아닌 것, 즉 마음이나 마음의 작용인 사상(諸法)의 구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접촉(觸)이오, 감수(受)요, 표상(態)이오, 의사(意思)요, 마음(心)이라고 하셨습니다. 

[대왕]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존자]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손 주걱으로 바다 물을 떠서 맛본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이것은 간지스 강 물이다, 이것은 줌나 강 물이다, 이것은 아키바티이 강 물이다, 이것은 사라부우 강 물이다, 이것은 마히이 강 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이라고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대왕] 존자여, 구별할 수 없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보다도 더 어려운 일을 세존은 치렀습니다. 즉 하나의 감관 대상에 대하여 작용하는 물질적이 아닌것. 즉 마음이나 마음의 작용인 사상(諸法)의 구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접촉이오, 감수요, 표상이오, 의사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존자]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6. 대론을 끝내며


장로는 물었다. 

[존자] 대왕이여, 지금 몇 시인지 아십니까. 

[대왕]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초저녁(初更)이 지나고 밤중(中更)으로 접어들었을 뿐입니다. 등불용 횃불이 켜져 있습니다. 네 개의 기가 세워지고 선물이 그대를 위하여 창고로부터 운반되고 있습니다. 


요나카 인들은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하] 대왕이여, 참으로 이 수도승은 현자입니다. 

[대왕] 정말 그렇다. 장로는 현자이다. 그 분과 같은 스승이 있고, 나와 같은 제자가 있다면, 현자는 진리를 깨우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장로의 해답에 만족한 왕은 나아가세나 장로에게 10만금의 값어치가 있는 모직 옷을 선사하고 이렇게 말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오늘(사흘 째)로부터 8백일 동안 나는 그대에게 식사 공양을 드리겠습니다. 궁정에 있는 것 중에서 그대에게 알맞은 것은 무엇이든 바치겠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만 하십시오. 나는 생활할 수 있습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가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 자신을 옹호하고 또 나를 옹호해 주십시오, 즉 `나아가세나 존자는 밀린다왕에게 청정한 신앙을 불러 일으켰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고 하는 세평이 닥쳐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선물을 받음으로 그대 자신을 옹호하십시오. 또 `밀린다 왕은 청정한 신앙을 얻었지만, 그러한 신앙을 얻었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는 세평이 빗발 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선물을 받으심으로 나를 옹호해 주십시오. 

[존자] 그렇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대왕] 존자여, 사자왕은 금궤에 들어가더라도 얼굴을 밖으로 향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속가(在家) 생활을 하더라도 출가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얼굴을 밖으로 향하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집을 버리고 출가하더라도 출가 생활을 오래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출가하려고 생각하자 나의 적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아가세아존자는 밀린다 왕과의 문답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승방으로 돌아갔다. 나아가세나 존자가 돌아간 뒤 얼마 안되어 밀린다 왕은 `나는 무엇을 물었던가, 존자는 무엇을 대답했던가'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밀린다 왕은 `나는 모든 것을 똑바로 질문했고 존자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대답했다'고 결론지었다. 

승방에 돌아온 나아가세나 존자도 역시 `밀린다 왕은 무엇을 물었던가, 나는 무엇을 대답했던가'고 생각했다. 그리고 존자는 `밀린다 왕은 똑바로 질문했고, 나는 정확하게 대답했다'고 결론지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 옷을 입고 바루(鉢)와 가사를 들고 밀린다 왕의 궁정으로 갔다. 자리에 앉자 밀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인사 드리고 한 편으로 앉았다. 그리고 밀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 하지는 마십시오. 즉 `나는 나아가세나에게 질문했다는 즐거움 때문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존자여, 나는 밤새도록 생각에 잠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무엇을 질문했는가, 존자는 무엇을 바르게 대답하셨는가'라고. 또 `나는 모든 것을 똑바로 질문하고 존자는 모든 것을 바르게 해답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로는 또 이렇게 말했다. 

[존자] 대왕이여, 아무쪼록 이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즉 `존자는 밀린다 왕의 질문에 대답했다는 즐거움 때문에 뜬 눈으로 새웠다'고 대왕이여, 나는 밤새도록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즉 '밀린다 왕은 무슨 질문을 했던가 나는 무슨 해답을 주었던가'고. 또 `밀린다 왕은 모든 것을 똑바로 질문하고 나는 모든 것을 바르게 해답했다'고.이리하여 두 현자는 서로 올바르게 말한 일을 만족하게 생각했다.   





토론


1. 부처님에 대한 공양(供養)은 결과를 맺는다


그때, 밀린다 왕은 질문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자, 스승의 발 아래 머리 숙여 합장 예배하고, 이렇게 말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다른 학파(異學)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부처님이 공양을 받는다면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般涅槃) 즉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에 드셨을 리가 없다. 부처님은 아직도 세상에 묶여 있고, 세상 안에 있으며, 아직 세상 일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위하여 공양을 드리는 것은 헛된 일이고 결과도 없는 일이다. 또 만일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드셔서 세상을 떠나 있고 세상에 있지 않다면, 부처님은 공양을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완전한 열반에 든(사멸한) 사람은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는 사람에게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고 결과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고. 이것은 양도논법(兩刀論法 즉 두 뿔 사이로 피하는 딜렘마)입니다. 이것은 깨치지 못한 사람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뛰어난 사람들에게 적합한 문제입니다. 부디 이 사견(私見)의 그물코를 풀어서 결론을 내려 주십시오. 이 난문을 그대에게 제출합니다. 미래의 불자(佛子)들에게 지혜의 눈을 열어 반대자의 논난을 굴복시키도록 해 주십시오.

장로는 대답했다. 

[존자] 대왕이여,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사멸)에 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공양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보리수(菩提樹) 아래서 조차 공양받는 일을 버리셨는데, 윤회하지 않는 열반의 경계(無餘依涅槃界)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부처님에게 있어서는 당연합니다. 대왕이여, 법장(法將) 샤아리풋타 장로는 이렇게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비길 때 없는 부처님, 

여러 신과 사람들에게 공양을 받으시지만, 

이러한 공양도 예배도 바라지 않으시니, 

이는 부처님의 본성(本性)이니라. 


왕은 물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아들이 아버지를 칭송하거나 또는 아버지가 아들을 칭찬하거나 그것은 반대자를 굴복시키는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칭찬은 다만 그들 서로의 신뢰를 나타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여기서, 그대 자신의 입장을 세워 사견(私見)의 그물코를 풀어헤쳐 나의 질문에 충분한 해답을 주십시오. 

장로는 대답했다. 

[장로] 대왕이여,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공양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과 사람들은 이미 공양을 받지 않는 부처님의 유골(駝都寶)과 부처님의 지혜(智慧)에 의지하여 바른 행동을 한다면, 세 가지 경계(三成就) 중 한가지에 이릅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커다란 불덩어리가 다 타서 꺼졌다고 합시다. 그때 불덩어리는 마른풀이나 땔나무를 필요로 합니까. 

[대왕] 존자여, 당장 타고 있을 때도 커다란 불덩어리는 풀이나 땔나무 같은 마른 연료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존자] 정신작용이 없는 불덩어리가 소멸했을 때, 다시 연료를 필요로 하겠습니까. 대왕이여, 불덩어리가 소멸했을때, 세상의 불은 완전히 없어지겠습니까. 

[대왕] 그렇지 않습니다. 땔나무는 불의 연료가 되고 불을 일으키는 소재가 됩니다. 불을 바라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정력과 힘과 노력으로 나무(鑽木)을 마찰시켜 불을 일으켜서 불이 필요한 일을 합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렇다면 `공양을 받지 않는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고 결과가 없는 것이라'고 하는 다른 학파 사람들의 말은 틀렸습니다. 대왕이여, 커다란 불덩어리가 타는 것처럼, 부처님도 수만 세계에서 광명을 비칩니다. 커다란 불덩어리가 다 타고 꺼지는 것처럼 부처님도 수만 세계에서 광명을 비친 다음, 윤회하지 않는 열반의 경계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미 소멸한 불덩어리가 마른 풀이나 땔나무와 같은 연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을 이롭게하는 부처님은 공양을 받는 일을 그만 두셨습니다. 대왕이여, 불덩어리가 꺼지고 연료가 다했을 때, 사람들은 정력과 힘과 노력으로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일으켜 불이 필요한 일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 신과 사람들은 완전한 열반에 들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는 부처님의 유골과 지혜에 의지하여 바른 행동을 할 때, 세 가지 경계 중 하나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대왕이여,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사멸)에 드셔서 이미 어떠한 공양도 받으시지 않지만,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지도 않고 결과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대왕이여, 아직도 그대의 의심이 그치지 않는다면, 그 밖의 또 다른 비유를 들으시오. 대왕이여, 큰 바람이 불다가 그쳤다고 합시다. 그쳐버린 바람이 또 다시 불려고 하겠습니까. 

[대왕] 존자여, 이미 그쳐 버린 바람은 또 다시 불 생각이나 계획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람은 정신작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존자] 대왕이여, 또 이미 그쳐 버린 바람에 대하여 `바람'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까. 

[대왕]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다아라 나무 잎사귀(多羅葉)와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입니다. 더위에 눌리고 열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아라 나무잎사귀나 부채를 가지고 정력과 힘과 노력으로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가라앉히며 열을 완화시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렇다면 `공양을 받지 않는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고 효과 없는 일이라'고 한 다른학파 사람들은 잘못입니다. 대왕이여, 큰 바람이 부는 것처럼, 부처님은 수만 세계에서 자비에 넘치는 시원한 바람과 훈훈한 바람과 잔잔한 바람과 산들산들한 바람을 보냅니다. 그리고 큰 바람이 불다가 멎는 것처럼, 부처님은 자비에 넘치는 바람을 보낸 다음, 윤회하지 않는 열반의 경계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미 그쳐버린 바람이 또 다시 불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부처님은 공양을 받는 것을 그만 두셨습니다. 대왕이여, 사람들이 더위에 눌리고 열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여러 신이나 사람들은 세 가지 번뇌불(貪=탐욕, 瞋=노여움, 癡=어리석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아라 나무 잎사귀나 부채가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인 것처럼, 부처님의 유골(遺骨)과 지혜는 세 가지 경계에 도달하는 수단입니다. 더위에 눌리고 열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다아라 나무 잎사귀나 부채를 가지고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가라앉히고 열을 완화시키는 것처럼,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셔서 이미 공양을 받지 않지만, 여러 신과 사람들은 부처님의 유골과 지혜를 공양하고 받들므로서 선근(善根)을 심고 그 선근에 의하여 3가지 번뇌불을 소멸시켜 갑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셔서 이미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지만, 부처님에게 드리는 공양은 무용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반대자의 논난을 굴복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비유를 들으시오. 어떤 사람이 큰 북을 쳐서 소리를 낸다고 합시다. 북소리는 곧 사라질 것입니다. 그 소리는 또 다시 울려고 하겠습니까. 

[대왕] 아닙니다. 존자여, 그 북소리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존자] 그 북소리는 또 다시 울려는 생각이나 계획을 하지 않습니다. 그 북소리는 한 번 울렸다가 사라지면 이미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존자여, 그러나, 큰 북은 소리를 울리기 위한 도구,수단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자기가 필요할 때 자신의 노력으로 큰 북을 쳐서 소리를 울립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계행(戒行=戒)과 마음의 통일(定)과 지혜(慧)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解脫)와 속박으로부터의 벗어남으로써 얻어지는 통찰력(解脫知見)으로써 충만되어 있는 부처님의 유골과 교법(法)과 교계(敎戒=律)를 스승으로 삼은 뒤, 윤회하지 않는 열반의 경계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셨을 때, 세 가지 경계에 도달할 가능성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일 생존(有)을 위한 괴로움에 시달리는 사람(有情)들이 부처님의 유골과 교법과 계율(戒律)을 의지(緣)하여 세 가지 경계에 도달하려고 한다면, 누구나 거기에 도달 성취할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이러하여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지만, 그 부처님에게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지 않으며 결과를 가져 옵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은 미래의 가능성을 이렇게 보고 말씀하고 지시해 주셨습니다. 즉 `아아난다야, 너희들은 `스승의 말씀은 이미 끝났고 이제 스승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아난다야,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 주고 가르쳐 준 진리의 가르침(法)과 계율(律)을 내가 죽은 뒤 너희들은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그러므로,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지만, `부처님을 향하여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고 효과없는 일이라'하는 다른 학파 사람의 말은 잘못이오, 거짓이며 진실치 못한 것이오, 허망한 것이오, 틀린 것이오, 전도(顚倒)된 것이오, 괴로움을 초래하는 것이오, 괴로운 결과를 낳는 것이오, 악한 생활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 밖의 비유를 또 하나 들으시오. 대왕이여, 이 대지는 `일체 종자야, 내 속에서 생장하라'고 바랍니까. 

[대왕]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렇다면 어찌하여 종자는 그렇게 바라지도 않는 대지 속에서 성장하여 뿌리를 강하게 붙이고, 줄기와 가지를 뻗고, 꽃과 열매를 맺습니까. 

[대왕] 존자여, 대지는 그것을 바라지 않지만, 종자가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 되고, 반연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종자는 발판을 의지하고, 반연을 따라 자라서 뿌리를 강하게 붙이고, 줄기와 가지를 뻗으며, 꽃과 열매를 맺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렇다면 다른 학파가 만일 `공양 받지않는 부처님에 대하여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고 효과없는 일이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학설에 의하여 파멸되고 격파되고 배반됩니다. 대왕이여, 여래(如來)와 아라한(阿羅漢)과 무상정등각자 (無上正等覺者)는 마치 넓은 대지와 같습니다. 대지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여래는 아무것도 받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종자가 대지를 의지하여 성장하고 결실을 맺는 것처럼,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지만, 모든 신과 사람들은 여래의 성골보(聖骨寶)와 지혜보(智慧寶)에 의지하여 선근(善根)을 뿌리박고, 마음을 통일하는 줄기와, 진리의 가르침인 뼈대(髓)와, 계행인 가지를 뻗치며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꽃과 출가자의 깨침인 열매(즉 預流,一來,不還,羅漢의 四沙門果)를 맺습니다. 대왕이여, 그러기 때문에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지만, 여래에게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지 않고 결과를 가져 옵니다. 


대왕이여, 그와 꼭 같은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이유를 들으시오. 낙타와 물소와 노새와 양과 숫소와 인간은 자기들 뱃 속에 기생충(키미)이 생기기를 바랍니까. 

[대왕] 아닙니다. 존자여. 

[존자] 그러면 어찌하여 기생충들은 동물이 바라지도 않는데 그들의 뱃 속에 생겨서 무수한 자손을 번식시킵니까. 

[대왕] 존자여, 악업(惡業)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존자]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아무것도 받지 않지만 여래의 성품과 지혜의 힘에 의하여 여래에게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지 않고 결과를 가져 옵니다. 


대왕이여, 그와 꼭 같은 또 하나의 이유를 들겠습니다. 대왕이여, 사람들은 자기들 몸에 98 가지 질병이 생기기를 바랍니까. 

[대왕]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 그러면 어찌하여 그런 질병이 생깁니까. 

[대왕] 전생(前生)에 행한 악행에 의하여 그러한 질병이 생깁니다. 

[존자] 대왕이여, 만일 사람이 전생에 행한 악행의 결과를 이 세상에서 받게(感受) 되는 것이라면, 전생이나 현세에서 행해진 악행은 결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가져 옵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아무것도 받지 않지만, 여래를 향하여 드리는 공양은 가치 있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그에 대한 또 하나의 비유를 들겠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전에 난다카라고 하는 마귀(夜叉)가 샤아리풋타 장로를 해치려다 땅 속으로 빠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대왕] 존자여, 들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존자] 그러면 샤아리풋타 장로는 악마가 그렇게 되기를 바랐습니까. 

[대왕] 존자여, 모든 천계(天界)와 인간계가 파멸되고 해와 달이 떨어지고 산중의 왕인 수메루 산왕(須彌山王)이 모두다 분쇄되는 한이 있더라도 샤아리풋타 장로는 남이 고통을 받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샤아리풋타 장로는 성내는 원인이 배제되어 뿌리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존자여, 그러기 때문에 샤아리풋타 장로는 자기의 생명을 앗아 가려는 자에 대해서까지도 화를 낼리가 없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만일 샤아리풋타 장로는 난다카가 땅 속으로 빠져 버리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난다카는 땅속으로 빠져 들어 갔습니까. 

[대왕] 난다카는 자신의 악행의 힘에 의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만일 자신의 악행의 힘에 의하여 난다카가 땅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면, 벌을 바라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저지른 행위(죄악)도 효력이 있고 결과를 낳습니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분에게 드리는 공양은 가치있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 세상에서 땅 속으로 떨어진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그 점에 관하여 들은 적이 있습니까.

[대왕] 존자여, 들은 적이 있습니다. 

[존자] 그러면 말씀해 보십시오. 

[대왕] 친챠야라는 바라문 여인과 샤카족의 숩파부다와 데바닷타 장로와 마귀 난다카와 난다라는 바라문 청년입니다. 이들 다섯 사람은 땅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들은 누구에게 죄를 지었습니까. 

[대왕] 세존과 그분 제자들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존자] 그러면 세존이나 그분의 제자들은 그들이 땅속으로 떨어지기를 바랐습니까. 

[대왕]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그러므로,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바라지 않으신데도, 그분에게 드리는 공양은 가치있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심오한 질문을 잘 해결해 주시고 해명해 주셨습니다. 오묘한 뜻(秘義)을 명백하게 해 주고, 얽어진 마디를 풀어 주고, 답답한 밀림(密林)을 개선해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반대론자의 주장은 논파되고, 그릇된 의견(謬見)은 잘못임이 입증되었으며, 여러 학파들도 가장 뛰어난 그대를 만났을 때 빛을 잃었습니다.




2. 부처님은 전지자(全知者)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존자]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은 무엇이든지 알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이 모든 것을 아심은 숙고(熟考=傾注)에 의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숙고하시면,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대왕] 존자여, 부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 것이 추구(尋求)하므로 도달 되는 것이라면, 그는 모든 것을 아셨을리 없습니다. 

[존자] 대왕이여, 여기 쌀 7암마나(약 두 말)반 씩을 실은 수레 100대가 있다고 합시다. 사려없는 사람이 그것을 잠깐 훑어보고, 쌀알이 모두 얼마나 될런지 셈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마음(心)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미망(癡)과 번뇌와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몸과 계행과 마음과 지혜의 수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사고력이 약하고 행동이 느립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수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대(竹)를 끌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 즉, 대가 번성하여 넓게 퍼져 있고 축 늘어져 있으며 얼크러져 있고 가지들이 서로 맞물고 있는 것을 끌어 낼 때 그 동작은 둔하고 더딥니다. 왜냐하면 가지들이 복잡하게 얼크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아까 말한 사람들의 마음은 활동이 느리고 둔합니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번뇌로써 일그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첫째 종류의 마음(第一心)입니다. 


다음에 이것과 구별되는 둘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악한 생존의 길이 막히고, 정견(正見)을 얻어 스승의 가르침을 식별하여 성자류의 경지에 든 사람들은 세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 있는 한,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보다 높은 영역에 관해서는 마음의 활동이 더디고 행동이 어려워 집니다. 왜냐하면 세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三處)에 있어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그 이상의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번뇌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마디까지 매끄럽고(淸淨), 그 윗 부분은 가지들이 휘감겨 맞물고 있는 큰 대를 끌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당길 때, 매끄러운 세 마디까지는 쉽게 움직이지만, 그 윗쪽은 꼼짝도 않습니다. 이것이 둘째 종류의 음(第二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셋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탐욕과 노여움과 미망이 줄어들어 단한 번만 망집(妄執)하는 생존으로 돌아오는 경지에 이른(一來果) 사람들은, 다섯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五處)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용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영역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용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다섯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그 이상의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번뇌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 마디까지는 매끄럽고 그 윗 쪽은 가지들이 휘감겨 얽히어 맞물고 있는 큰 대를 끌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 당길 때, 매끄러운 다섯마디까지는 손쉽게 움직이지만, 그 윗쪽에는 꼼짝도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탐욕과 노여움과 미망이 줄어 들어 단 한 번 망집하는 생존으로 돌아오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다섯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 있어서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높은 영역에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이것이 셋째 종류의 마음(第三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넷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감각적 욕망이 생존을 일으키는 하위의 다섯 가지 속박(五下分結)을 벗어 나서 두 번 다시 생존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이른(不還果) 사람들은 열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十處)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영역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열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서 마음이 청정하지만, 그 이상의 높은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번뇌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열 마디까지는 매끄럽고 그 윗 부분은 가지들이 휘감겨, 맞물고 있는 큰 대를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 당길 때, 매끄러운 열 마디까지는 손쉽게 움직이지만, 그 윗부분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넷째 종류의 마음(第四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다섯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더러움이(四대악)이 그치고, 마음의 때를 씻고, 번뇌를 내쫓고, 청정한 수행을 완수하고, 해야 할 선행을 마치고, 속박의 짐을 버리고, 참뜻(眞實義)을 성취하고, 윤회하는 생존에 집착하는 속박을 끊고, 아무 것에도 걸리지 않는 지혜에 이르러 부처님의 제자로써 청정한 수행도를 성취한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치는 경계(聲聞境)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스스로 깨친 사람의 경계(緣覺境)에 있어서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성문(聲聞)의 경계에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스스로 깨친 연각(緣覺)의 경계에서는 마음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줄기에 달린 모든 가지가 제거된 큰 대를 끌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당길 때, 모든 마디가 매끄럽고, 대 줄기에 얽히고 걸려있는 것이 없으므로 빠르고 쉽게 끌어당길 수 있는 것처럼,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성문의 경계에서는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스스로 깨친 사람의 경계에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이것이 다섯째 종류의 마음(第五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여섯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스스로 깨친 사람(緣覺)들은 독존(獨存)하고, 스승도 바라지 않고, 외뿔소처럼 홀로 행하고,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청정 무구(淸淨無垢)한 마음을 가집니다. 이같은 사람들은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높은, 모든 것을 깨쳐 안 사람의 경계에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마음이 청정하지만, 모든 것을 깨쳐 안 사람의 경계는 보다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에 있는 조그마한 시내는 밤낮 마음대로 두려움이 없이 건너는데, 깊고 넓고 깊이도 헤아릴 수 없으며, 끝이 없는 대양(大洋)을 보면 놀라고 주저하여 감히 건너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에는 친숙해 있지만, 대양은 너무나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깨친 사람들 즉, 독존하고 스승도 없고 외뿔소처럼 홀로 행하고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청정 무구한 마음을 갖는 사람들은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경계에서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자기 경계에 있어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모든 것을 깨쳐 안 사람의 경계는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섯째 종류의 마음(第六心)입니다. 


다음 이것과 구별되어야 할 일곱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전지자요 열 가지 지혜의 활동을 지닌 자(十力者)는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四無所畏)을 갖고, 열여덟 가지 뛰어난 부처님의 특성을 갖춘 승자(勝者)요, 무애의 지자(智者)입니다. 완전히 바르게 깨친 사람(佛陀)은 어느 곳에서나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행동은 쉽습니다. 대왕이여, 잘 닦아 녹이 슬지 않고, 마디가 없으며 날카로운 촉이 붙어 있고, 휘거나 구부러짐이 없이 똑바르게 생긴 화살이 있다고 합시다. 그 화살을 힘센 궁수가 부드러운 마지나 면직이나 좋은 모직물에 쏘아댄다면 화살의 활동은 둔하겠습니까. 

[대왕]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녁 바탕(布地)은 아주 훌륭하고, 화살은 고도로 조절되어 있고, 궁수는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존자]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내가 말한 부처님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佛陀)은 어느 곳에서나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행동이 쉽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면에 있어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일곱째 종류의 마음(第七心)입니다. 


대왕이여, 이들 일곱 가지 마음 가운데서 모든 것을 깨쳐 안 부처님의 마음은 활동력에 있어 나머지 여섯 가지 마음의 활동에서와 같은 계량(計量)을 초월하여, 마음의 청정함과 활동의 민활함을 우리들이 추측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이 행하는 마음의 활동력은 청정하고 민활하기 때문에, 그는 두 가지 신통 변화(神變)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신통 변화에서 `모든 부처님의 마음의 활동은 그처럼 민활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서는 그 이상 아무런 이유를 말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신통 변화는 전지 전능한 부처님의 마음에 의거하는 것이므로, 셈하거나 계산하거나 쪼개거나 분간하거나 할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모든 것을 아시는 부처님의 지혜는 숙고에 의합니다. 심사 숙고한 뒤,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압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사람은 이 쪽 손에 있는 것을 저 쪽 손에 옮겨 놓기도 하고, 입을 열어 말을 하기도 하고, 입에 들어간 음식을 뱉기도 하고, 눈을 감았다 떳다 하기도 하고, 팔을 폈다 굽혔다 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은 부처님의 지혜보다도 느립니다. 대왕이여, 모든 것을 아시는 부처님의 지혜는 보다 더 빠르고, 활동이 보다 더 용이하며, 심사숙고는 보다 더 빠르고 용이합니다. 심사숙고한 뒤 알고자하는 것을 아신다고 할지라도, 부처님을 심사숙고하지 않고 계신다는 이유로 부처님을 전지자(全知者)가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대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숙고(傾注)는 추구(尋求)에 의하여 행해집니다. 이제 여기서 몇 가지 비유를 들어 이 사실을 확신시켜 주십시오. 

[존자] 대왕이여, 큰 재산가요, 많은 금,은부치며 재보와 곡식을 가진 사람이 사아리 미(米)와 비이히 미와 보리와 정미(精米)와 밀과 콩과 완두콩과 그 밖의 모든 식용의 곡식과 버터기름과 버터와 우유와 굳기름(凝乳)과 벌꿀과 설탕과 흑설탕 등, 이 모든 것을 단지와 항아리와 남비와 갖가지 그릇에 담아서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고 합시다. 그 집에서 환대받을 만찬 손님이 환대를 기대하고 찾아 왔는데, 요리된 음식은 이미 먹어 없어졌으므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항아리에서 정미(精米)를 꺼내 음식을 만든다고 합시다. 식사때도 아닌 때, 먹을 음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부잣집 사람을 빈곤하다고 하겠습니까. 

[대왕]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여, 왕중의 왕 전륜왕(轉輪王)의 궁전에서도, 식사 때 외에는 요리된 음식이 갖춰 있지 않습니다. 하물며 일반 사람들 가정에서이겠습니까. 

[존자]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는 숙고(傾注)를 결하고 계실 때에도 모든 것을 아시는 지혜(一切知